일단 세월호에서 안타깝게 스러져간 이들에 명복을 빈다.
죽음이라는 것은 그 자체가 슬픈 일이다. 어떤 죽음이든 모든 이에게 기쁜 죽음은 없다.
김정일이 죽어서 대다수는 기뻐하지만 적어도 김정은의 눈물이 거짓일 수는 없다.
김정은이 죽는다 하더라도 우리 모두는 기뻐하겠지만 그 가족의 슬픔마저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다.
죽음은 분명 슬픈 일이지만 모든 죽음에 나라 전체가 집단적으로 감정 이입되어 그것을 괴로워하고 우울증을 앓아서는 안된다.
세월호 사고에 대해 조금이라고 냉정하자고 말하면
특히 아이를 둔 엄마들은 거의 경기를 일으키며 자식을 잃은 슬픔을 아느냐고 힐난한다.
그들의 논리는 간단하다. 내 자식이 죽는다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해는 한다. 자식을 잃는 부모의 마음을 굳이 부모가 되어야 이해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이런 나라에서는 결코 나라를 위해 죽는 영웅이 탄생할 수 없다.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치는 용사가 나올 수 없다.
멀리 갈 필요도 없이 우리 부모님의 세대만 하더라도 죽음에 대한 숙명론이 있었다. 비록 자식 잃은 슬픔에 땅을 치며 통곡을 하더라도 죽음을 받아들이는 자세는 의연했고 담대했다.
나라를 위해 자식을 바치는 것은 가문의 영광이었고 어린 자식들에게 그렇게 나라를 위해서 기꺼이 죽으라 가르쳤다.
'신체발부수지부모'라 하여 머리카락 하나 상하는 것을 극심한 불효라 여겼던 시대에도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치는 것은 오히려 큰 효도이고 충이야 말로 효와 더불어 큰 덕목으로 여겼으니 우리 조상들은 그 죽음이라는 것에 대해서 초연했다.
그러나 지금 우리 주변의 모습은 어떤가.
죽음은 그 이유와 동기를 막론하고 슬픈 것, 우울한 것, 불편한 것으로 여기고 있지 않은가?
특히 부모는 자식의 죽음을 어떤 이유에서든 용납할 수 없는 것으로 나라 전체가 몰려가고 있지 않은가?
내 자식 귀한 것이야 당연지사이겠지만
앞으로 이 나라에서 모든 죽음은 슬픈 것, 우울한 것, 불편한 것으로 치부될 것이다.
그동안의 우리 사회가 이토록 나약해졌고 병 들었다는 반증이다.
부모들은 자식들에게 어떻게든 살아남는 것이 좋은 것이라 가르치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내 살길을 찾아나서라 가르치는 꼴이다.
분명 이번 사고는 대의를 위한 죽음도 아니고 나라를 위한 죽음은 더더욱 아니다. 그래서 누구나 가족의 심정, 부모의 심정은 이해한다.
그러나 이번 사고에 대처하는 나라 전체의 태도는 앞으로 우리에게
숭고한 죽음조차도 슬픈 것, 우울한 것, 불편한 것으로 평가 절하될 것이다.
전쟁터에 자식을 보내려는 부모는 찾아보기 힘들 것이고 전사한 자식을 자랑스러워 할 부모도 없을 것이다.
우리가 지금 가장 먼저 걱정해야 하는 것은 바로 우리가 곧 마주해야 할 이런 나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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