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역한지 5년이 지났다. 이쯤되면 군대물이 빠질법도 하건만 11년동안 진하게 먹은 물이라 그런지 좀처럼 빠지지 않는다. 더군다나 캐나다에 살다보니 더한 것 같다. 전역 후 얼마 안있어 호주로 떠나 다시 캐나다로 오다보니 내 기억속의 한국은 거의 군에서 보낸 시간들이다.
요즈음 윤일병 사건으로 통칭되는 군대 폭력 사건으로 인해 별 별 잡소리들이 눈과 귀를 괴롭힌다. 방송에서는 군대생활을 해보기는 했을까 싶은 작자들이 나와서 병영문화가 어떻니 군대가 어떻니하며 개소리를 해대는 것을 보면 웃음이 나온다. 하긴 미필이 운영하는 군인권센터라는 곳이 이번 사건을 터뜨렸다는 것 자체가 아이러니 한 나라니까 그러려니 한다.
난 장교출신이다. 그래서 병들의 문화를 알지 못한다. 그러니 병들 사이에 벌어진 이번 일에 대해서 아가리 닥치라고 하면 할 말은 없다. 그런데 병들은 고작 2년도 안되는 시간을 군에서 보내고 가지만 나는 11년을 보냈다. 처음 같이 생활했던 병사들은 96년말 군번부터 98년 6월군번들이었다. 마지막으로 군에서 데리고 있던 해군 수병이 08년 1월 군번인가 그랬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지만 90년대 군번인 병들과 08년 군번인 병들의 사고방식이나 병영생활은 판이하게 달랐다. 그로부터 수년이 지난 지금의 병영문화는 또 변해있을 것이다. 병출신 예비역들은 자신이 겪었던 그 시기의 병영만 안다. 그러니 본인들보다 긴 시간 그걸 지켜 본 나같은 간부출신들이 오히려 더 잘알 수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각설하고
결론부터 말하자면, 군대 폭력의 원인은 한마디로 '장기간 지속된 평화'다.
군대는 폭력성을 추구하는 집단이다. 병들이 훈련소에서 배우는 과목들이 무엇인가? 적을 효율적으로 죽이는 기술이다. 육군의 주요병과인 보병, 포병, 공병, 기갑, 통신, 정보는 바로 효과적으로 적을 죽이고 작게는 전투에서 크게는 전쟁에서 이기는 기술이 집약된 것이다. 병사들은 눈을 뜬 순간부터 잠자리에 드는 순간까지 그 폭력성을 극대화시키는 훈련 속에서 생활한다. 폭력과 아무관계가 없을 것 같은 부대에서 근무하는 병사들이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다. 군복을 입는 순간부터 모든 군인은 폭력성을 극대화시키고자하는 환경에 놓이게 된다.
전투 나아가서 전쟁은 그 폭력성을 해소하는 공간이다. 모든 군인은 적보다 강해야 하고 모든 적보다 우위에 있어야 한다. 아침에 점호와 함께 뜀걸음을 하는 것도 그저 장병들의 건강을 위해서가 아니라 적보다 나은 체력을 기르기 위해서다. 즉, 강자가 되어야 한다.
민간에서는 진정한 사나이란 '강자에게 강하고 약자에게 약한 자'여야 하지만 군에서는 '강자 앞에서는 약할 줄 알고 약자에게는 최소의 자비도 베풀어서는 안되는 자'가 진짜 군인이다. 무슨 궤변이냐고? 눈에 뻔히 보일 정도로 강한 적인데 내 분수를 모르고 덤비면 자신은 물론이고 전우마저 죽게 만든다. 그러니 강한 적은 되도록 피해야 한다. 약한 적에게 자비를 보이면 적은 바로 내 뒤통수를 치게 된다.
군의 폭력성은 이런 특성을 가지고 있다.
그러니 그 폭력성을 발휘할 공간이 필요한 것이다.
그것이 바로 전투고 전쟁이다.
그런데 6.25 전쟁 이후 우리 군 전체가 전쟁에 뛰어든 적이 있었나? 월남전은 몇개 사단만이 참전했으니 예외로 치고 우리 군 전체로만 따지면 무려 60년 가까이 전쟁을 모른체 평시만 계속 된 '고도 비만'의 군대가 된 것이다.
파병을 가더라도 안전한 곳, 싸울 필요가 없는 곳으로 간다.
행여 위험한 곳에 가야 하는 상황이 되면 지구상의 항구적인 평화가 가능할거라고 믿는 씹선비들인 시민단체와 좌파 나부랭이들이 지랄들을 해대기 때문에 우리는 늘 안전한 곳으로만 간다.
이라크전만 보더라도 1개 사단급의 군을 파병해놓고 정작 우리 군은 연합군 내에서 아무런 목소리도 내지 못했다. 바그다드에 다국적군 사령부에서 보는 한국군은 '선전용 군대'였다. 아무도 인정해주지 않는 파병인데 스스로 모범적인 파병이라며 자위를 하는 뭣도 아닌 군대란 말이다. 이라크 아르빌로 파병가는 병사들은 출국때만 하더라도 엄청 긴장들을 하지만 정작 거기서 6개월을 생활하다보면 피둥피둥 살이 쪄서 나온다. 오죽하면 이라크 파병 무용담이라고는 시도 때도 없이 불어오는 모래폭풍과 싸운 것이 고작일까.
파병 이야기만 나오면 내가 예를 드는 것이 있다.
어떤 사람이 맨날 집에 앉아서 밥만 처먹고 자다보면 지 몸에 무슨 이상이 있는지 모른다. 몸을 일으켜 움직여봐야 어디가 문제가 있고 이상이 있는지 파악을 할 수 있고 병도 예방할 수 있다.
우리 군은 지난 60여년간 집에서 밥만 처묵처묵하던 고도 비만의 환자였다. 움직여보질 않으니 어디가 아픈지 어디가 이상이 있는지 알 수가 없다. 단 한번도 전투를 해 본적이 없는 육군참모총장이고 전투기를 타고 적을 공격해 본 적이 없는 공군참모총장이다. 특전사 707대대의 저격수는 단 한번도 누군가를 저격해 본 적이 없는 저격수다. 충무공의 후예라는 해군이지만 몇몇을 제외하고는 1년 12달을 대양에 나가 파도와 싸우는 원양어선 선원들보다 못한 뱃놈일 뿐이다.(그나마 해군이 타군에 비해 좀 낫다)
이런 군대이니 병사들은 그 폭력성을 배출할 길이 없다. 전투를 하지 않으니 한까치 담배도 나눠 피우는 전우애도 없고 밟아도 뿌리 뻗는 잔디가 아니라 밟는 족족 스러지는 온실속의 화초들이 되어버린다.
적을 향해야 하는 폭력의 칼날은 엉뚱하게 후임들을 향하고 북한군이 주적이 되어야 함에도 이건 간부를 주적으로 삼고 있다.
이 세상 어느 군대, 특히 전쟁이 하시라도 발발할 수 있는 상황의 군대가 이럴까?
세상에는 전쟁과 거리가 먼 군대들이 있기는 하다. 좌파들이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기는 북유럽의 군대들이나 영세중립국인 스위스같은 나라들의 군대는 전쟁과 약간 거리가 멀다.(물론 그들도 전쟁을 대비하긴 한다)
지난 60년간 우리 군은 허군헌날 전쟁을 치르는 미국이나 이스라엘군같은 전투력 최강의 군대들이 아니라 북유럽 군대처럼 관리형 군대로 전락했다. 북한이라는 실체적 위협이 있으니 훈련이든 장비든 전투력 최강을 위한 조건을 만들어야 하지만 당장 전쟁터로 나가서 싸우라도 등 떠미는 이가 없으니 그저 병력관리 잘하고 사고 없는 군대 만드는 것이 지휘관들의 진급 필요충분조건이 되어버린 것이다.
전투를 한번도 해 본적이 없는 장군들보고 '지장'이니 '덕장'이니 '용장'이니 하는 것도 웃길 뿐더러, 독일에서 유학했다고 '기갑전술의 대가'니 '연합작전의 귀재'니 하는 수식어를 붙이는 것은 손발이 오글거린다. 장군이 뭔 전투를 지휘해야 장군이지.
미군을 보더라도 별 쓰레기같은 놈들이 다 지원을 한다. 그냥 동네 양아치가 아니라 갱단에서 활동하던 놈도 그놈의 마초기질을 한 번 극한으로 레벨업 해보겠다고 지원을 한다. 그런 놈들이 전쟁터에 한번 다녀오면 순한 양에 정의의 사도가 돼서 돌아온다. 죽음의 문턱에서 선후임을 막론하고 내 옆에 있는 새끼가 내 전우고 내가 그놈 시체를 거두든 그 놈이 내 시체를 거두든 생사고락을 같이해야하는 사이가 되는 것이다. 당장 내게 총구를 겨누는 적이 있는데 그 놈말고 누구에게 폭력을 쓰겠나? 미군도 군대폭력이 있다. 죽음의 문턱에도 정신 못차리는 개또라이 같은 새끼들이 있기는 하다. 일반적인 선에서 비교하자는 것이다.
윤일병 사건은 군대만의 문제가 아니다. 이병장 같은 새끼는 일단 그 부모와 그놈을 길러낸 학교와 사회의 문제가 더 크다. 그런 폭력적인 새끼가 군이라는 폭력성이 합법적으로 부여된 조직에 들어왔으니 불에 기름을 부은 격이다.
군대 폭력을 줄이는 방법?
전투병을 파병해라. 이 병장같은 개또라이의 폭력성을 적을 향해 배출할 수 있게 만들어주면 된다.
'신바람 나는 병영생활'같은 뭣같은 구호나 만들어내는 고도비만의 대한민국 군대로는 군대폭력은 요원하다.
아무리 군이 발버둥쳐도 부모가, 학교가, 사회가 개 또라이를 양산해내는데 군대가 무슨 도리가 있겠나?
지 아들 귀한줄만 알고 오냐오냐 키우는 싸가지 없는 부모들, 학교만 졸업하면 내 일 아니라고 생각하는 병신같은 교사들, 군대가면 사람된다고 철썩같이 믿는 사회 구성원들. 이미 재활용이 불가능한 쓰레기를 어떻게 사람을 만드나?
군대에서 사람을 만들려면 전쟁터에 내보내야 하는데 그게 싫다면 이미 사람이 되어서 군대에 오던지 아니면 1박2일 원숭이 마냥 이빨을 뽑던지 해서 안오던지.
이번 사건으로 군대에 아들 안보내고 싶다는 부모들이 있다.
웃긴 건, 학교 폭력이 심해도 학교 안보내겠다는 부모는 없더라.
군대에 아들을 보내던 안보내던 일단 당신 아들이 개또라이는 아닌지 판정부터 받아보길 바란다.
이번 사건을 보면서 드는 생각;
부모들이 자식을 군대에 보낼지 안보낼지 고민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군대가 그 또라이들을 받을지 말아야 할지 고민해야하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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