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뭣같은 세상, 이민이나 가버릴까? - 노노노

스스로 보수라는 사람들은 그런 이야기를 잘 안하지만 소위 스스로 진보라고 자처하는 분들은 자기들이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으면 '이민이나 갈까'라고 이야기하는 것을 어렵지 않게 보게 됩니다.

뭐 본인이 이민 가고 싶다는데 말리고 싶은 생각도 없고 그렇게 이민이라는 것이 쉬운 일도 아니라서 그리 신경 쓰진 않습니다.

오늘은 정치적인 견해는 완전히 배제하고 그런 마음에서 시작되는 이민에 대해서 한번 이야기 해볼까 합니다.

어떤 동기에서 비롯되었든 '한국이 아닌 다른 나라에서의 삶'을 동경하는 차원에서의 이민은 그리 좋은 결말을 가져다주지 못합니다.

어느 나라로 이민을 가든지, 어떤 형태로 이민을 가든지 이민은 '메이저에서 마이너로의 다운 그레이드'입니다.

안타깝게도 전 세계에서 한국어를 공용어로 사용하는 나라는 대한민국, 북한, 중국 북부의 일부 지역입니다. 쉽게 말해서 한반도를 벗어나면 한국어를 공용어 또는 제2국어로 사용하는 나라는 전무하다는 것입니다. 언어도 그러하니 문화 또한 한반도외의 지역에서 그대로 유지하며 살기 어렵습니다.

아무리 그 나라의 언어에 능통하더라도 이민이라는 것은 마이너가 된다는 것입니다.

정치적인 견해나 사회에 대한 불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이민을 꿈꾸는 것은 사실 자기 앞에 놓인 현실을 외면 내지 부정하겠다는 의지의 발로라고 여겨집니다. 그렇다면 이민이 그 사람에게 새로운 대안이나 현실과 정반대의 상황을 제공해주어야 하는데 실상은 그보다 더 안좋은 상황을 만들어 줍니다.

캐나다에 있다 보면 주변에 실제로 그런 이유로 이민을 온 사람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자신은 이런 저런 이유로 대한민국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새로운 대안으로 캐나다 행을 택했다고 하는데 정작 그 사람의 캐나다 생활은 그가 한국에서 영유했던 삶보다 더 나아진 것도 없고 오히려 더 안 좋습니다.

투표권도 없습니다. 영주권을 바로 취득한 경우가 아니라면 어디까지나 임시 체류자의 신분입니다. 어떤 경우에는 기본적인 의료보험의 혜택도 받지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아파도 병원 한번 찾아가기 어려운 것이죠. 텔레비전을 봐도 도통 알아들을 수도 없고 그러다보니 점점 관심도 떨어집니다. 여전히 인터넷으로 한국의 뉴스를 찾아보고 외국 땅에서 한국을 욕하고 있죠. 몸은 외국에 있지만 여전히 그의 사고는 대한민국에서의 그것과 별 차이가 없습니다.

계층의 격차는 더 합니다. 영주권자와 非영주권자, 비지니스 이민자와 취업이민자, 원주민과 외국인, 주류 인종과 비주류 인종, 언어 능통자와 언어 장애자... 내가 남들보다 더 뛰어나거나 하나라도 더 가지고 있지 않으면 상대적인 박탈감과 패배감에 젖어들기 쉽습니다. 여기서 몇 백만 불짜리 비지니스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에휴…….캐나다에서 살기 참 힘들어"라고 해도 절대 동감이 되는 것이 여기 생활입니다. 한국 같았으면 분명 배부른 소리 한다고 했겠죠.

나는 한달 600불짜리 아파트 렌트해서 살고 있는데 누구는 번듯한 하우스에서 살고 있는 모습을 보곤 부러워하는 신규 이민자들 만나기 어렵지 않습니다. 그런 것에 무감각한 저도 이제 4년차가 되어서야 비로소 그런 감정에서 자유로워졌는데 이제 막 이곳에 뛰어든 사람들은 오죽 할까요. 누구는 현금으로 새 차를 지르는데 나는 2000불짜리 25만 이상 뛴 중고차도 감지덕지 하다고 생각하면 참 그렇습니다. 물론 시간이 지나면 새차든 중고차든 기름 덜 먹는 차가 장땡입니다.(현기차 짱짱짱...그러나 내차는 도요타ㅜㅜ)

이민은 현실을 피하는 도피처가 될 수는 없습니다. 당연히 현실의 문제점을 일거에 해소할 수 있는 대안도 될 수 없습니다.

이민은 지금보다 더 힘든, 박탈감과 패배감에 빠져들 수 있는 헬 게이트가 될 수도 있습니다.

굳이 이민을 오시겠다면 지금이라도 당장 펜과 노트를 꺼내 '내가 이민을 가면 포기해야 하는 것들'을 적어보십시오.

대한민국에서 내가 즐길 수 있는, 누릴 수 있는 것들이 무엇이 있는지 적어 보십시오.

나의 일상에서 내가 소중하고 감사하게 생각하는 것들이 무엇이 있는지 적어보십시오.

아마 그렇게 적고 나면 쉽게 '이 뭣 같은 세상, 이민이나 갈까?'라는 생각은 안들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이민이 땡긴다면?

와야죠. 안 오면 병 생깁니다. 이민병.

약도 없습니다. 이민병 생기면 와서 죽이 되든 밥이 되는 들어와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