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2월 21일 화요일

나란 사람

가능한 블로그에 내 개인신상에 대해서는 잘 안쓰는 편이다. 워낙 좁은 위니펙 교민사회다 보니 한다리 건너면 다 아는 사이고 얼굴은 몰라도 이름이나 카페활동을 했던 경우라면 닉네임 정도는 다 아는 사이들이다. 

나란 사람에게 원래 이민이란 것은 상상 속에서도 하지 않았던 대상이었다. 20대 중반쯤 어쩌다가 사귀게 된 '한국어를 나보다 잘했던' 미군 아가씨가 처음 같이 미국으로 가자고 했었을 때에도 차라리 헤어지면 헤어졌지 부모 형제 버리고 이민은 갈 수 없다고 버티더 나였다.
그런 나에게 30살이 되던 해부터 말도 안되는 우연으로 인해 영어 공부를 하게 되고 영어와 관련된 일을 하게 됐다. 

지금 돌이켜보면 내가 지금 캐나다에 살고 있는 것도 그 30살의 전환점에서 시작된 내 인생역정의 연장선상에 있는 이벤트라고 볼 수 있다.

난 군인이었다. 지금도 군인의 마음으로 살고 있다.

남들에게는 잠시 다녀 올 군대라는 대상은 내겐 내 청춘이고 내 삶이었으며 내 인생의 3분의 1을 넘는 긴 시간을 보낸 추억의 장소다.

선후배 동기들처럼 산과 들을 뛰는 전형적인 군인의 모습은 아니었지만 여전히 내 피는 붉은 색이 아니라 녹색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 뼈 속까지 군인인 사람이다.

그런 내게 이민이란 또 다른 고통이다. 요즘에야 그런 시선들이 덜 하다고들 하지만 조국을 버리고 자기 잘 살겠다고 다른 나라로 '도망 친' 매국노라는 시선을 받을 때도 있다. 여전히 내 조국을 사랑함에도 단지 캐나다 땅에서 살고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민이란 내게 또다른 기회였다. 한국에서는 군복을 벗는 순간 다시는 군으로 돌아갈 수 없는 존재이고 내 나이에는 다시는 제복을 입고 사람들을 위해 서비스를 할 수 있는 기회가 박탈당할 수 밖에 없지만 여기 캐나다에서 나는 경찰도 될 수 있고 연방의 Peace Officer 또는 다시 캐나다의 군인이 될 수도 있다. 지금 하고 있는 Security Guard도 그것을 위한 Career를 쌓기 위함이다.

남들에게는 이민이란, 특히 40줄에 들어선 사람의 이민이란, 캐나다 사회에 적응하기 바쁘고 낯선 언어와 시스템 등과 싸워야 하는 것일지 모른다. 하지만 내겐 어쩌면 운명같은 일인지도 모르겠다. 30살 인생의 전환점을 맞은 나란 사람은 40살에 변곡점을 지나 다시 사람들, 캐나다와 시민들에게 봉사할 수 있는 기회를 얻고 있다. 

내게 이민은 도피처가 아니었다. 청동기시대 '소도'처럼 그저 그 안으로 피한다고 해서 모든 것으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는 피난처라는 것은 그 누구에게도 허락되지 않는다. 그리고 그런 마음으로 하는 이민이 얼마나 불행하고 안타까운 결말을 맞게 되는지 수도 없이 봐왔다. 내게 남은 인생이 얼마나 될지 모르지만 기회를 찾아 온 캐나다. 그저 먹고 사는 일이 아니라 제복을 입고 공공에게 봉사하는 녹색의 피가 다시 내 심장을 뛰게 만들어주기를 기대한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